• 왜 화합해야하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1-28 / 조회 : 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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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가 성립되기 전까지의 불교의 사회윤리는 ‘사섭법’(四攝法)이나 ‘사무량심’으로 표현되었다.
  사섭법은 자신의 것을 남과 공유하고자 하는 보시(布施),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을 건네주는 애어(愛語),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인 이행(利行), 상대방의 일을 내일처럼 생각하고 협력하는 동사(同事)를 말한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타인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주는 행위인 자(慈),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느끼고 가여워 하는 마음인 비(悲), 타인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기꺼워하는 희(喜), 마음에 끓어오르는 번뇌 망상을 모두 던져 버리고 난 뒤에 느끼게 되는 심리적인 평정의 상태를 말하는 사(捨)가 그것이다.
  부처님은 사섭법과 사무량심을 통해 이 세상이 사랑과 웃음으로 싱그럽기를 기대하셨다. 인간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탐욕과 분노, 미움과 저주의 불길을 가라앉힌다면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세상은 저절로 오리라는 생각으로 부처님은 인간의 마음과 그 의식구조를 바꾸면 사회의 온갖 갈등 또한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에 사섭법과 사무량심의 실천을 강조하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 또한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듯이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 서로가 의지하여 살지 않으면 혼자서 지탱하기 어렵다. 지옥, 아귀, 수라, 축생, 인간, 천상의 육도 윤회의 인과가 나뉘어지듯이 인간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배운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등등으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들어 난 모습만 갖고 판단하면 안 된다.
  부처님은 “요익중생하라” 하셨다. 즉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고 이르셨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모순을 타파하기 위하여 8만4천 법을 설하셨고 실천행을 강조하셨다. 고통받고 어려운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탁마하며 잘 살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 해답의 길은 4성제와 8정도에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45년 동안의 설법 중 4성제(고성제.집성제.멸성제.도성제)와 8정도(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념.정정.정정진)의 깊이를 가르치시고 많은 대중들에게 화합(和合)을 강조하셨다.
  화합하는 것은 정도(正道)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믿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상생(相生)의 길이란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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