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우리’의 축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6-27 / 조회 : 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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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거대한 우리의 축제

 

(중간제목)

월드컵선수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화엄 바다에 태어나 일체를 나누고 융통

 

(본문)

2014 월드컵이 개막된 지 얼마안돼 네덜란드와 칠레, 콜롬비아는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국팀이 16강에만 싶은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롬비아 선수들에게는 월드컵하면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20년 전인 1994년 미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때였다. 당시 콜롬비아는 펠레가 우승후보로 꼽을 정도로 실력이 막강했다. 그런 콜롬비아가 축구 약체였던 미국에 어처구니없이 패하면서 16강에도 끼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안드레 에스코바르라는 수비수가 자책골을 넣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콜롬비아 국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 지, 에스코바르에게 쏟아진 비난이 얼마나 거세었을 지는 짐작할 만하다. ‘역적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실수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는 여자친구와 레스토랑에 갔다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즉사했다. 범인은 이를 자책골에 대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월드컵이 뭐 길래?’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뭐 길래 감정이 이렇게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치닫는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한국팀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대단히 격앙된 상태가 된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각자의 손과 발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면서 흥분하고 환호하고 소리치고 열 받고 낙담하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모두 연결된 존재, ‘우리가 된다. 한국팀의 경기를 우리가 단순히 즐기는 차원에서 관람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런 심리작용이 바로 부처님의 자타불이(自他不二) 가르침이다. 화엄 바다에 태어나 일체의 현상과 현실을 나누고 융통하는 마음, 나와 네가 둘이 아닌 모두 하나라는 뜻이다. 나아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하나임을 알고 살라는 일깨움이다. 그래서 나와 남은 서로서로가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있어 하나라는 뜻이며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지혜를 읽어야 한다.

우리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의 내면에는 몇가지 심리적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본다. 우선은 연상 작용이다. ‘우리팀이 잘 싸워 승리하면 그것이 곧 나의 승리로 여겨지는 심리이다. 맹수처럼 달려가 날카롭게 골을 쏘는 선수와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일체화하면서 찾아드는 것은 대리만족이다.

이어지는 것은 카타르시스. 전후반전, 90분간 일상사를 잊고 오로지 환호하고 박수치며 경기에 몰입하는 동안 존재의 정화작용을 경험한다. 일상생활 중에 쌓인 찌꺼기들을 훌훌 털어내는 기분, 스트레스와 욕구불만의 무게가 부쩍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축제의 기능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월드컵 덕분에 다시 한번 우리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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