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죽음 사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8-21 / 조회 : 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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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정신 감정 영혼 골고루 살펴야

가진 것 늘었지만 상대적 결핍감 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는 다행히 비행기는 폭발하지 않았고 인명피해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적었다. 비행기 사고에서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은 90초라고 한다. 90초 내에 대피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90초가 지나면 죽을 위험이 높다는 말, 죽음은 90초 바깥까지 다가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승객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부서지고 시커멓게 불탄 비행기 잔해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전해주었다.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깨달음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때로 죽음은 우리가 나이 들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순간에 덮친다.

삶과 죽음이 다급하게 가까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비유가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이다. 경전 가운데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유명한 <불설비유경>에 부처님께서 복잡한 인생본질을 몇마디로 적시한 비유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다가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언덕 아래의 우물 속으로 피신한다. 위로부터 늘어져있어 넝쿨을 잡고 버티는데 우물 속이라고 안전한 게 아니다. 아래에서는 4마리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위에서는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넝쿨을 쏠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에 있던 벌집에서 꿀이 떨어지자 그는 꿀맛에 취해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를 까맣게 잊는다. 넝쿨은 생명줄,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의미한다. 죽음은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 중생은 순간의 욕망에 취해 눈먼 삶을 살고 있다는 비유이다.

갑작스런 죽음들이 요즘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흰쥐와 검은 쥐가 넝쿨을 갉아서 끊어버릴 나이가 아닌 데도 사고로, 질병으로 죽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노후 대비하겠다며 일만 하던 사람이 은퇴자금 한푼 못 쓰고 덜컥 쓰러지고, 평생 고생만 하다가 먹고 살만하니 암에 걸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찾아들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을 네 개의 방이 있는 집에 비유하는 인도의 속담이 있다. 사람은 육체, 정신, 감정, 영혼이라는 네 개의 방으로 되어 있어서 매일 각 방에 들어가 살펴야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어느 한 방에 틀어박혀 사느라 다른 방들을 방치해서 문제가 생긴다.

지금 죽음을 맞는다면 어떤 후회를 할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공 강박증이 심한 사회, 그래서 잠시라도 손 놓고 있으면 괜히 불안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삶은 늘 분주하고 복잡해서 가족들조차 얼굴 마주하기 힘들 정도이다. 덕분에 가진 것은 많아졌지만 상대적 결핍감에 만족은 없다.

죽음이 닥치면 놓고 갈 것들, 소유의 비중이 너무 커졌다. 존재에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네 개의 방모두 잘 정돈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삶과 죽음의 사이가 그렇게 먼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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