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사]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2-14 / 조회 : 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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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여는 첫 해, 2013년 계사년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도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새해 시작과 함께 여성리더십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모성의 따뜻한 가슴으로 갈등을 털어내고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신명나는 공동사회를 열어가기를 기대하게 합니다.

세계사 최초로 만민평등 사상을 일깨운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운명이란 각자 행하기 나름이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업(, 까르마) 사상입니다. 실제 부처님의 일깨움은 당시 인도에서 평소 수드라, 바이샤와 연결된 모계혈통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던 마우리아 제국 3세손 아소카를 크게 고무시켰으며, 하나의 인도 건설을 뒷받침하는 통치이념이 되었습니다. 아소카 치하에서는 법 적용에 차별이 없었습니다.

반면, 세계사를 주도해 온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를 지지했습니다. 시민 혹은 자유인이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그들을 대신해 육체노동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 중에는 육체노동에 더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타고난 노예가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선천적인 노예가 있고, 사회가 노예를 필요로 한다면 노예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논리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믿으면서도 노예제도를 인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에 의존했을 것입니다.

노예대신 여성을 대입해도 논리는 같습니다. 남성들이 국가를 이끌고 사회를 이끄는 막중한 역할을 감당하려면 그들을 대신해 집안을 보살필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 중에는 육아와 요리 등 집안일에 더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여성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안사람이었던 배경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여성은 집안에서, 남편의 그늘에서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어졌던 것입니다.

문제는 노예여성이든 그들에 맡겨진 역할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유의지로 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별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가부장 전통과 함께 수천년 여성을 둘러싸고 있던 벽들이 계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참정권에서부터 교육 취업 승진 등 차별의 벽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더니 이제는 여성들이 안 가는 데도 못 가는 데도 없습니다. 금녀의 영역이었던 각 전문분야마다 여성들이 속속 진출해 있고,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는 여성이어서 오히려 더 환영 받는 분위기입니다. 심지어 군부대에서조차 여군에 대한 벽이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토픽에서는 미국 국방부가 전투지휘관을 비롯한 모든 전투병과 보직을 여군에게 개방한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벽은 보호이자 차단입니다. 외부의 거친 환경으로부터 보호막 역할을 하는 한편 외부 세계가 펼쳐낼 모험과 가능성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교 여성들이 집 밖에서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히잡이라고 하는 가리개를 쓰는 것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 여군을 포병, 보병, 기갑 특수작전 등 전투병과에서 제외한 것은 기본적으로 보호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여성에 대한 배려로 이해가 됩니다. 군 지휘부가 남성 일색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이런 배경도 한몫을 했습니다.

전쟁터만큼이나 금녀의 영역이었던 곳으로 병원 외과가 꼽힙니다. 전쟁터처럼 피 튀기는 곳이어서 오랫동안 남성의 독무대였습니다. 최근 외과의 금녀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번 수술실에 들어가면 꼬박 5~6시간씩 서서 수술해야 하는 체력적 부담 때문에 여성은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었는데 이제는 외과의사 중 여성이 1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여성 스스로가 보인 능력,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입니다. 여의사에 대해 못 미더워하던 환자들이 이제는 여성의사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만약 600여년전에 양반-상놈의 신분제도 폐지를 외치면 감옥에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주자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단기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발전은 사회 곳곳의 불공평한 벽과 경계를 허물어 가는 것, 그래서 인류가 인종과 성별을 넘어 평등에 이르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금년은 뱀의 해입니다. 뱀은 주의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는 주의 깊은 동물로 인식됩니다. 또 뱀은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허물(껍질)을 벗으며 성장하는데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날 때마다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훌쩍 커져 새 세상을 맞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를 벗고 끊임없이 새 삶을 시작하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수없이 다시 태어나는 윤회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뱀의 해를 맞아, 뱀처럼 슬기롭고, 거듭나는 탈바꿈으로 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서 미래를 헤쳐 나가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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