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가분해서 행복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1-11-05 / 조회 : 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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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121-1면 무공저

(큰제목)

홀가분해서 행복해

(중간제목)

관조와 지혜에서 오는 ‘노년의 행복’

유한성· 작은것에 대한 자족과 감사

(본문)

젊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노년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사회적인 역할이 축소되는 이 시기는 두려움으로 다가서기도 하고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고픈, 회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속살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곤 한다.

하지만 노인들은 의외로 행복하다.

최근 실시된 한 노인 조사 결과도 많은 노인들이 비록 이런저런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현재 행복하다” 또 “지금 이승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장수와 건강, 신앙생활, 가족 등 다양했다. 그러나 재산과 지위를 꼽은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어느 정도 수준만 넘어서면 돈은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에는 건강과 경제력 같은 외형적 조건을 뛰어 넘는 어떤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인간의 행복감은 인생의 시기에 따라 U자형을 그린다. 거칠 것 없고 희망에 부푼 청년 시절 최고점에 달한 행복감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삶에 찌들어 가면서 서서히 낮아져 중년기에 저점에 도달한다. 자식들과 부모 양쪽으로부터 치여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바로 그 시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행복감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해 노년기에 들어서면 젊은 시절과 비슷한 수준의 행복감에 다시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년에 찾아오는 이런 행복감은 무궁무진해 보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던져주는 젊은 시절의 행복감과는 결이 다르다. 세월과 기회를 많이 쥐고 있다는 데서 오는 포만감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데서 오는 자족과 감사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어 이승에서의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시간의 한계에 대한 깨달음은 흔히 젊은 시절 잊고 지냈던 집중성과 강렬성을 되살려 주며 그것은 노년의 또 다른 선물이 된다.

그러나 유한성에 대한 각성만으로 노년의 행복감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여기에 더해 풍상을 겪고 단련되면서 얻는 지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야망이 소멸한 자리에는 관조와 받아들임이 들어선다.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 등 사회적 책무를 벗어 던지고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그 상황이 선사해 주는 편안한 감정이 바로 홀가분함일 것이다. 노년의 행복은 한마디로 이런 홀가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경남 통영에 있는‘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묘소에 가면 이런 시구가 새겨져 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에게 편안함을 안겨준 감정과 지혜가 노년의 전유물만 되어야 할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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