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 그리고 이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8-17 / 조회 : 9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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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황혼 그리고 이혼

 

 

(중간제목)

인연을 씨앗 삼아 마음 밭에서

관계의 나무를 튼실하게 키워야

 

(본문)

수마트라 섬 밀림지대에는 샤망이라는 큰긴팔원숭이가 살고 있다. 사람처럼 암수 한쌍이 새끼를 낳아 가족을 이루며 사는 유인원이다. 이 원숭이 부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자신들의 영역을 알리느라 노래를 부르는데 연륜이 쌓이고 부부간 정이 깊어질수록 이중창 실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동물원에서 억지로 짝을 짓게 하면 놀랍게도 부부가 새끼는 낳아도 같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부부간 교감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 소식이 지구촌을 흔들었다. 무엇보다 세인의 관심이 쏠린 것은 그들의 이혼 사유. 천문학적 부를 일구고 범지구적 프로젝트로 사회환원을 하며, 도무지 부족할 것 없어 보이던 그들이 왜 갈라서는 걸까.

66, 55세 빌 부부처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살다가, 뒤늦게 부부가 갈라서는 이런 황혼이혼이 우리 사회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결혼 이혼율이 모두 줄었지만 유독 50세 이상 황혼이혼만 늘었다. 황혼이혼은 현재 전체 이혼 3건 중 1건 꼴이며 전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오래 같이 산 부부들이 왜 줄줄이 헤어지는 걸까.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근본적 이유로는 길어진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꼽힌다. 환갑이면 노인이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60은 너무 젊고 건강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대략 30. 그래서 50~75세는 인생 제3으로 분류된다. 성장기와 성년기의 1~2막을 거쳐 노년기로 들어가기 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중간단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50대 중반을 넘어선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경우 이혼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부 합의 하에 사이좋게 결별하기도 한다. ‘결혼을 졸업한다고 하는 이 졸혼 현상도 인생 제3과 상관이 있다.

결혼생활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토대로 유지된다. 부부가 같이 할 일과 같이 나눌 사랑, 같이 하는 시간.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인 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불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가르친다.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 한번 스치고, 8,000겁의 인연이 있어야 부부로 맺어진다고 한다. 겁이란 100년에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아서 사방 15km의 바위가 닳아 없어질 시간,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만큼 인연을 소중하게 대하라는 가르침이다.

인연이 우리의 의지 너머 신비한 힘으로 만남을 이끌어준다면, 그 인연을 씨앗삼아 관계의 나무를 키워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마음 밭이 비옥할수록, 물과 양분을 정성껏 공급할수록 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라날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끝내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악연에서 선한 인연을 이끌어내는 지혜로운 이들도 있다. 그 귀한 인연들에 우리는 그에 마땅한 정성을 쏟고 있는지, 너무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다. ‘관계의 나무들을 얼마나 튼실하게 잘 키워냈느냐가 결국 우리 인생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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