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속 부처를 찾아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1-28 / 조회 : 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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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達磨)가 서쪽에서 왔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그 연대가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달마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달마는 결코 제자들에게 불교 경전을 강독하게 하지 않았다. 또 불교 경전의 계율(戒律)을 지키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불성(佛性)이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스스로 찾으라고만 하였다. 불성은 이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거나 깨우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달마의 불성 찾는 방법은 면벽(面壁)하고 참선(參禪)하는 것이었다.
  면벽(面壁)하고 구도(求道)하던 달마는 어느 날,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그들로 하여금 각자 깨달은 경지를 말해 보도록 했다. 도부(道副)라는 제자가 먼저 말했다. “저의 소견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문자(文字)에 집착하지 말고 그렇다고 문자를 버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만 문자를 일종의 구도하는 도구로서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달마가 말했다. “너는 겨우 나의 껍질만 얻었구나.”
  다음은 총지(聰持)라는 비구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제가 이해한 바는 아난다가 아크쇼비아(석가여래 이전의 부처님)의 불국토(佛國土)를 본 것과 같습니다. 한 번 보고는 다시 못 보았으니까요.”
  달마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라는 다른 제자가 입을 열었다. “땅, 물, 불, 바람의 사대(四大 : 大는 우주와 삼라만상을 형성하는 요소)는 본래 공허한 것이며 눈, 귀, 코, 혀, 몸의 오온(五蘊)은 모두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보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달마가 또 말했다. “너는 겨우 나의 뼈를 얻었구나.”
  마지막으로 혜가(慧可)가 절을 하고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달마는 탄복하며 “너야말로 나의 몸을 얻었구나.” 라고 하였다. 
  도부와 총지와 도육은 모두 자기가 깨달은 바를 언어로 설명하였다. 이에 달마는 이들의 깨달음이 부분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인간의 몸을 전체라고 할 때 껍질과 살과 뼈는 모두 몸을 이루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혜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혜가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언어로는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선가(禪家)에서 법통(法統)을 전하는 한 토막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언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언어는 결코 인간과 세계의 모든 것을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달마는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고, 혜가도 이를 깨달았다.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 셈이다. 혜가는 말없는 가운데 많은 것을 말했고, 달마는 이러한 혜가의 마음을 마음으로 읽었던 것이다. 
  노자(老子)도 일찍이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말한 바 있다. 노자의 이 말도 전체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며, 이를 말하는 사람은 일부분밖에 알지 못하므로 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달마와 제자 사이에 있었던 선문답이나 노자의 말은 서로 통하는 것으로 동양의 사유가 가졌던 언어관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언어의 한계에 대한 인식은 뒷날 “입을 열기도 전에 그르쳤다 (未開口錯)”는 극단적인 경지까지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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