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1-08 / 조회 : 1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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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중간제목)

표현· 집회의 자유, 보편적 인간 본능

민주국가로 한 단계 더 성숙하는 발판

 

(본문)

인간에게는 표현의 욕구가 있다. 머릿속의 생각들, 가슴속의 감정들을 품기만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기어이 표현하고 싶어 한다. 구석기 시대 동굴 생활 때부터 인간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동물 뼈를 깎아 무엇인가를 만들기도 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품으로 꼽히는 것은 독일 남부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매머드 상아로 만든 조각상이다. 머리는 사자, 몸은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서 사자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 조각상은 대략 32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멸종된 매머드가 초원을 누비던 아주 아득한 시원의 땅, 동굴 안에서 그는 돌도끼를 들고 상아를 깎으며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를 형상화하면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표현은 욕구이기 이전에 인간 본능이기도 하다.

고려 학승이신 일연 스님의 저서 삼국유사에 신라 48대 경문왕 이야기가 나온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갑자기 귀가 길어졌다.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어버린 사실을 부끄러워한 왕은 철저하게 숨겼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왕의 모자를 만드는 장인 단 한 사람뿐이었고 장인은 이 기막힌 사실을 말할 수 없어 평생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다 마침내 죽을 때가 되자 상주 도림사(道林寺) 인적 없는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기어이 말로써 쏟아내지 않고는 속이 답답해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뒤이어 이 소리는 바람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리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도록 했는데 그 후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라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설화는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있고, 유럽 여러 지역에 있으며, 페르시아 이야기책에도 나온다고 한다. 유사한 이야기가 구전으로 퍼져 세계 여러 문화권에 공존하는 배경은 인간의 보편적 표현본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쏟아낸 것은 단순히 귀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체제에 반하는 것까지 포함한 모든 언급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절대왕정과 독재정권 하에서 표현의 본능, 욕구 혹은 소명은 통제되었고, 이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이 마침내 표현의 자유를 탄생시켰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표현의 자유는 먼저 존중받는 불가침의 인권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국민의 인권을 다룬 제2장 제21조로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이다.

우리는 지금 합법적인 표현의 자유로 격동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근거로 거대한 시위의 광장이 열리고 정국이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 행여라도 진영논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잘 반영돼 우리가 민주 공화 국가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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