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회사상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4 / 조회 : 9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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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회사상

중간제목/ 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삶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업에 의한 윤회며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의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

 

중생은 끊임없이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돌고 돌며 생사를 거듭한다고 보는 윤회는 고대 인도인들의 정신문화사이며 힌두교사상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윤회는 다른 여러 나라에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보면 옛날이야기에 사람이 죽어 어떤 집에 개로 태어나거나 소로 태어나 그 집을 위해 봉사하다가 죽거나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윤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불교에서 우리의 존재는 결코 한 시기의 존재가 아니고 업의 힘에 의해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생사를 되풀이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삶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업에 의한 윤회라고 말한다.

이런 불교의 업과 윤회사상은 불교만의 독창적인 사상은 아니었다.

이것은 부처의 출생이전부터 인도 아리안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보편적인 인도의 사상이었다.

업과 윤회는 불교 밖에서 들어온 이론이었으나 부처는 처음부터 이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불교의 업과 윤회사상으로 완성하였다.

불교의 모든 교리들은 윤회사상의 기초위에서 성립되며 실로 모든 불교교리는 윤회를 인정하는 데서 존재가치를 가지게 된다.

만약 윤회사상을 불교에서 제거해 버린다면 불교라는 구조물은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업과 윤회설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거나 인간조건의 불평등이나 존재의 사후 운명을 설명하는 이다.

지옥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으나 반면에 굶주림의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 한 곳에서 내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의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 자기책임적인 것이다. 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向上)과 향하(向下)가 가능할 뿐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이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보다 중요시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등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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