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4 / 조회 : 9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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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

 

(중간제목)

자신을 잊을 정도로 가없는 자비심

부모 사랑위대하면 기적일어나

 

 

(본문)

불교는 자비를 가르치고 기독교는 사랑을 가르친다. 다른 존재를 조건 없이 품어 안는다는 점에서 같지만, 불교의 자비는 자()와 비()로 보다 구체적이다. ‘는 이로움과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는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자비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한량없이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먹이고 입히며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이며, 고통 받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다. ‘자비의 세월로 여성은 어머니가 된다.

모성애하면 신라시대 혜통 스님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삼국유사에 담긴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일화이다. 혜통 스님이 출가하기 전 어느 날이었다. 산기슭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가 보여서 누구라도 그러하듯 별 생각 없이 잡아서 삶아 먹었다. 그리고 추려낸 뼈는 동산에 버렸는데 다음날 새벽에 나가보니 그 뼈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점점이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고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수달의 굴이었다.

어제 혜통 스님에게 잡혀 죽은 수달은 어미였던 것이다. 뼈만 남은 어미가 굴 안에 남겨진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품어 안고 있었다. 죽어서도 갓 난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절절한 본능에 혜통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고 출가를 결심 했다고 한다.

경전에는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를 바라고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려는 것이 어머니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에서 어머니는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자식에게 먹이는 그런 존재이다.

오래전 한 불자 교도관으로부터 20대에 이미 전과 3범인 아들을 원수 같이 미워했다는 아버지와 그런 아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교도소에 있었는데, 어머니는 한 번도 면회를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포기를 모르는 어머니 사랑은 마침내 사람들을 변하게 했다고 한다. 우선 아들이 변해서 마음을 잡았고, 아버지 역시 아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어 분노와 미움 대신 그 놈도 내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했다. 사랑이 위대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큰 원인의 하나를 가정의 붕괴에서 찾는다. 이런 환경에서 양산되는 것이 분노에 찬 아이들이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다. 모든 존재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의 자비심이 존재를 살찌운다. 그리고 삶의 어느 불행한 모퉁이에서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그 존재를 들어 올리는 것은 부모의 사랑, 자신을 잊을 정도로 가없는 자비심이다. 부모는 절망의 우물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존재, 칠흑 같은 어둠을 촛불 하나의 희망에 의지해 헤쳐 나가는 존재이다. 부모란 자식을 위해서 못할 게 없는 사람’,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이 오늘도 그들을 버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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