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하의 노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8-20 / 조회 : 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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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하의 노래

 

 

그대 가슴 속의 꽃을 피워라 - 오쇼의 사라하 강의

미혹된 자는

키스의 쾌락을 갈구하며

그 쾌락이 궁극의 현실이라고 하네.

마치 집 떠나는 남자가 문 앞에 서서

여인에게 감각의 쾌락이 어떠냐고 묻는 것처럼

 

의 집에서

생물적 힘이 바람처럼 일어나

수 많은 방식으로

인위적 쾌락을 일으켰다네

그리하여 요가 수행자들은

고뇌에 빠져 각성을 잃게 되었나니

이는 천상의 공간에서 추락하여

유혹에 빠져 악업을 짓는 것이네

 

마치 천상의 공간에서 내려줄

감로수를 위해

쌀과 버터를 제물로 태우는 브라만 사제들이

자기 도취에 빠져 그러한 행위를

궁극의 경지라 보는 것과 같네.

 

또 어떤 이들은

몸 속의 을 점화시켜 정수리까지 끌어 올려

성교하듯이 혀로 목젖을 어루만지며

그런 속박시키는 행위를 해탈의 길인양 착각하네

그리고 자만에 빠져 자신을 요가 수행자라 부를 것이네.

 

- 탄트라 지도, 사라하

 

 

 

 

 

 

 

탄트라는 자유다.

마음의 모든 구성물로부터의 자유,

마음의 모든 게임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형태로부터의 자유,

타인으로부터의 자유,

탄트라는 있음을 위한 공간이다.

 

탄트라는 解放이다.

 

모방하지 말아라.

그저 흉내장이가 되지 말아라.

붓다가 되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예수가 되려고 노력하지도 말라.

 

창의적이 되라.

무엇을 하든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하라.

독창적이고 확실한 그대의 도장을 찍을 수 있또록 노력하라.

마루를 닦을 때 조차도 그대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닦을 수 있다.

요리를 할 때도 그대만의 고유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

 

모든 행위를 창조적으로 할 수 있다.

창조적이 되어야 한다.

창조적이면 창조적일수록 좋다.

 

내적인 체험을 큰 깨달음이라 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해탈이란

또 다른 족쇄에 자나지 않는 것.

빛깔이 푸른 유리 장신구가

그들에게는 값비싼 에메랄드

미혹된 사람들은 모르네

그들이 틀림없는 보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보석이 아님을.

 

그들은 구리를 황금으로 여기네

산만한 사념을 묶어서

그 사념들이 궁극적 현실이라고 생각하네

그들은 꿈 속에서 경험한 쾌락을 갈망하나니

이제 곧 사라지고야 말 이 몸과 마음을 보고

최상의 영원한 지복이라고 하는구나.

 

이들은 이봠이라는 만트라의 암송으로

자아 정화가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네

그들은 자기가 상상한 자연스러움이

네 개의 봉인을 열어주는

특정 상황들이라고 하네

그러나 이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것이로다.

 

미혹에 빠진 사슴 떼가

신기루를 알아채지 못하고

신기루의 물을 향해 돌진하듯이

미혹된 사람은

갈증을 풀지 못하고서

족쇄에 묶인 채로 쾌락을 찾으며

이 모든 것이 궁극의 현실이나고 하네.

 

경험은 하나의 대상이 되고

'경험하고 있음'은 대상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다.

 

지식은 대상이고 알아가고 있음은 과정이다.

사랑은 대상이고 '사랑하고 있음 loving' 은 과정이다.

 

그래서 탄트라는 말한다.

 

'그대 내면의 본질은 고정된 사물이 아닌

진행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는 지식이 아닌 -알아가고 있음- 이 있다.

사랑이 아닌 '사랑하고 있음'이 있다.

 

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동사만 존재할 따름이다.

 

이것은 실체에 대한 심오한 직관이다.

오직 동사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나무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되고-있음 tree-being'이다.

나무는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이것이 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그것은 '강 흐름'이다. 강은 흐르고 있다. 강은 역동적이다.

단 한 순간도 똑같지 않다.

그런데 왜 그것을 ''아리고 부르는가.

심지어는 바위도 바위가 아니다.

그것 역시 진행형이다.

 

존재는 사물이 아닌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냥 '나는 사랑의 상태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라.

사랑은 사물이 아니다.

그대는 다만 사랑의 상태에 있을 따름이다.

그대가 사랑할 수는 없다.

 

거세된 소는 빈약한 상태이다. 거세된 소는 노예이다.

황소는 아름답다. 황소는 영광스러운 상태이고 눈부신 광휘이다.

홍소가 걷는 것을 보라. 그의 걸음걸이는 참으로 황제 답다.

그리고 수레를 끌고 있는 거세된 소를 보라.

 

똑같은 일이 인간에게 행해졌다.

성의 본능은 축소되고 단절되고 붕괴되어 왔다.

지금 인간은 황소와 같이 존재하지 못하고

거세당한 소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수많은 수레를 끌고 있다.

 

성의 억압이나 성의 금기는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데 가장 기본이다.

성이 자유롭지 않는 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성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허용되지 않는 한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스러울 수 없다.

 

 

다음의 다섯가지 술책을 통해

인간을 노예로 추한 기형아로 변질 되었다.

 

첫째로 인간을 지배하고 싶다면

가능한 인간의 나약함을 유지시켜라.

인간의 나약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전하게 사랑할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둘째, 가능한한 사람들을 무지하고 혼미하게 해서

잘 속을 수 있게 하라.

그리고 사람을 백치로 만들고 싶을 때-성직자나 정치가들의 결탁에 필수적인-

가장 좋은 것은 사람에게 자유로운 사랑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세번 째 비밀은

가능한 한 인간을 움츠린 상태로 있게 하라.

그 확실한 방법은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공포를 소멸 시키기 때문이다.

 

넷째, 가능한 한 인간을 불행한 상태로 유지시켜라.

불행한 사람은 혼미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없으며

불행한 사람은 자기 비판적이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분명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은 뿌리가 없다.

그는 여기 저기 떠밀려 아주 쉽게 浮木이 되어 버린다.

불행한 사람은 항상 비난받고 명령받고 훈련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다섯 번째, 가능한 한 사람들이 서로 틀어져서

성직자와 정치가가 원하지 않는 목적을 위해 서로 단결할 수 없게 하라.

 

이 삶이 유일한 삶이다.

내세는 이 삶 속에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삶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삶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이 삶 속에 있다.

이 삶 속으로 들어 오라.

 

사회는 그대가 사회의 존경을 갈망하도록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통해 사회는 그대를 지배한다.

사회는 그대가 규정을 따르면 존경하고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모욕한다.

사회는 그대에게 심하게 상처를 준다.

사회의 규정을 따르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노예로 만드는 대신 큰 존경심을 지불한다.

하나 그대가 자유인이고자 한다면,

사회는 분노한다.

그러면 그대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자유이이면서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사회는 자유인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사회의 존속을 위협한다.

사회는 항상 대열에 낄 준비가 되어 있는 얼간이들, 기계, 로봇을 좋아한다.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모방꾼들이다.

 

그대 자신이 되라.

아무도 그대를 착하게 만들 수 없고,

아무도 그대를 악하게 만들 수 없다.

그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대를 착하게 만들 수 없고 악하게 만들 수 없다.

그 거짓된 이미지들은 단지 꿈 속의 삶일 뿐이다.

 

탄트라는 儀式이 없고 성직자가 없고 경전이 없기에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종교가 아니다.

탄트라는 진리를 향한 개인적인 접근이다.

 

탄트라는 무진장 혁명적이다.

탄트라의 진리는 조직이나 공동체에 있지 않다.

탄트라의 진리는 개인성에 있다.

 

탄트라는 그대를 신뢰한다.

 

탄트라는 말한다.

그대가 날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면

그대의 삶은 전율과 모험의 연속일 것아라고.

그대는 절대 권태롭지 않을 것이다.

권태로운 사람은 비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대는 항상 ''을 신기해 하고

미지와 낯선 것을 탐구하려 할 것이다.

그대의 시야와 감각은 명료할 것이다.

그대는 항상 찾고 탐구하고 발견하고 추구하므로

둔탁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욕심은 무지에서 나온다.

그대는 내일의 삶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축적한다.

내일의 삶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 지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비축하고 욕심스럽게 된다.

지성적인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욕심이 없다.

욕심은 두려움과 함께 있다.

 

사람들 속에 공포를 창조하고

사람들 속에 욕심을 창조하라.

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탐욕스럽게 만들어라.

자신의 인생에 만족할 수 없게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은 성직자에게 가고 정치가에게 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리석은 욕망과 바보같은 환상들로

가득한 미래의 삶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성적인 사람은 실현 가능한 것에 만족한다.

지성적인 사람은 인생과 인생의 한계를 본다.

 

내일의 안전을 요구한다는 것은

끝없이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그대는 현재를 놓친다.

미래의 안전에 대한 욕구로 그대는 현지를 망가뜨린다.

 

그러나 현재야말로 유일한 삶이다.

 

지성은 그대 스스로의 존재를 신뢰한다.

지성은 모험이고 전율이고 희열이다.

지성은 이순간에 사는 것이지 미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지성은 현재 가능한 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미래는 그 속에서 나올 것이다.

 

일단 기쁨으로 가득 찬 세계로 들어가

세상을 보는 눈이 폭넓어지면

그로 말미암아 이것 저것이 가장 잘 쓰일 자리를 알게 되고

비록 대상을 쫓아 달려갈 때조차도

마음은 언제나 마음 자체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기쁨과 쾌락의 꽃봉우리 열리고

영광의 잎은 자라네

딴 데로 새어나가는 것이 전혀 없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복은 열매맺으리

 

지금까지 해온 모든 행동과

그 행동의 열매가 어디서 무엇이 되든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로다.

그러나 그 모두는

이것 저것에 쓰임이 되었구나

열정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 모든 것은 다

의 나타남이었네

 

내가 만약 사람들 말대로

진창을 뒹구는 돼지와 같다고 본다면

이 순수한 마음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그대는 내게 말씀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에

어찌 지금 다시 속박될 수 있겠습니까.

 

- 사라하

 

탄트라는 불교에 대한 반역인 동시에

붓다에 대한 지지이다.

탄트라는 추종자를 반대하나, 스승엔 반대하지 않는다.

 

추종자들은 문자에 연연해 하나

사라하는 그 영혼을 되찾아 왔다.

 

사라하는 붓다와 같이 깨달음을 이룬 화신이다.

사라하는 붓다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짓을 했든지

 

그것은 모두 간밤에 한바탕 꿈이었네

 

삼사라와 니르바나를 아는 데 도움이 됐네

 

정열적으로 살든지 아니면 그럭저럭 살아가던지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

 

한바탕 부드러운 꿈인 것을...

 

 

내가 돼지 같다고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왕이여, 당신이 한번 말해 보시오

 

내 마음이 이렇게 순수한데

 

여기 무슨 잘못과 거짓이 있겠는가요

 

그 어느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내가

 

어떻게 지금 당신에게 다시 속박될 수 있겠습니까?

 

 

 

 

사라하의 노래는 구경묘각의 노래이다

 

주객이 사라진 자 만이 이 노래가 주는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감각의 이 깊이를 경험한 자여

 

이 세상을 보는 눈이 폭넓어졌네

 

이로부터 모든 것이 그 용도(用途)를 알게 되고

 

비록 세상일에 얽매여 분주하다 해도

 

그 마음은 언제나 깨달음과 더불어 있네.

 

 

기쁨의 꽃봉오리 열리고

 

영광의 잎들은 자라네

 

그대 주시력(注視力)이 그 어느 곳으로도 흘러 나가지 않고

 

주시(注視), 그 자체로서써 충만할 때

 

더없는 이 축복은 열매 맺으리,

 

 

사념(思念),이지(理智),그리고 저 마음속에 부침(浮沈)하는

 

갖가지 환영(幻影)들은

 

모두 이 진공(眞空.sunya)에서 비롯되었네

 

이세상 모든 것이 ​​,,,

 

감각과 그 감각을 느끼는 주체(主體)

 

우둔함과 혐오와 욕망 , 그리고 깨달음

 

이런 모든 것들이

 

저 진공(眞空)에서 떨어져 나와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일 뿐이네,

 

 

불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진공(眞空)의 지혜는

 

지식의 축적으로 분열되고 있는

 

마음의 어둠을 지워 버리네

 

욕망의 바람이 잔

 

존재의 이 상태를

 

아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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